수년의 사범 생활 중 최고로 나태했던 날 :: 2009.09.17 00:26


드디어 나에게 새로운 직함이 생겼다.

어제 하루는 내가 태권도 사범으로 일하면서 가장 나태했던 날이다.
미친 게 아닌가 싶다.

수업 내용은 발놀림 연습과 스트레칭으로 몸 풀기를 하고 팔굽혀펴기와 윗몸일으키기 체력측정을 한 다음 초급자들 집중 수업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전날 태권도 모임에서 운동 강도가 높았고, 새벽에 집에 와서는 태권PAPS 신청서 작성한다고 꾸물거렸다.
자려고 누웠는데 TV에서 재밌는 영화가 하는 바람에 거기에 빠져 아침 6시는 넘어서야 잠들었다.

12시가 넘어서 어기적 일어나 1시가 넘어서 도장에 출근했다.
첫 부는 5명 안팎이 오기 때문에 안 그래도 기운 빠지는데 전날의 폐인 짓으로 말미암아 너무나도 피곤했다.

이전 같으면 정신력으로 버티며 충실히 수업을 했을 텐데 이제 보는 이 아무도 없기에 타락하고야 말았다.

전날 모임에서 발을 다쳐 제대로 걷기도 어려운 상태라 발놀림 연습은 건너뛰고, 스트레칭 가볍게 하고 곧바로 체력측정으로 들어갔다.
체력측정을 하기 전에 오늘 수업태도가 좋으면 자유시간을 주겠다고 선언했다.
아이들은 자신들을 위한 것인 줄 알겠지만 쉬기 위한 포석이었을 뿐이다.
시간을 재며 아이들이 팔굽혀펴기를 할 때마다 개수를 세어주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지루해졌다.
잠이 쏟아지기에 밖에서 보이지 않는 구석으로 들어가 매트 위에 거의 반 누운 자세로 있었다.
1분 동안 시간을 측정해야 하는데 꾸벅꾸벅 조는 바람에 1분을 넘기는 경우도 생겨버렸다.
아이들 체력측정을 대충 마무리해놓고 자유시간을 주고 나는 구석에서 20~30분을 그렇게 잠들었다.
세 타임을 그렇게 보냈다.
네 번째 타임은 인원이 많아 체력측정만 하고 끝나버렸고, 마지막 중고일반부에서는 야구하라고 시켜놓고 사무실에서 프린터 설치한다고 시간을 보내버렸다.

온종일 내가 이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면서도 피곤함을 극복하지 못하고 자신을 놓아버렸다.
아무도 간섭하지 않고 보지 않는다 하여 이제 막장으로 치닫는 것이 아닌가...ㅜ,.ㅜ

처음 사범 생활을 할 때는 수업을 시작하면 퇴근할 때까지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곤 단 1분도 앉지 않았는데, 이제는 드러눕는 지경이 되어버렸다.

어제의 내 모습을 돌아보면 손발이 오그라들 지경이다.
혹여나 학부모가 보기라도 했으면 뭐라 했을까....
처음으로 관장이라는 직함이 새겨진 띠를 매었는데 나는 그야말로 나태함의 극치를 달렸다.
처음이자 마지막이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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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성 | 2009.09.17 02:03 신고 | PERMALINK | EDIT/DEL | REPLY

    태권마루님의 글을 기다렸는데 드디어~!^^
    쉽게 꺼내기 어려운 부분임에도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깊게 공감되는 부분도 많으며 사범생활의 제 자신을 많이 체크해보았습니다.
    끊임 없는 자기 체크와 반성의 관리가 정말 어려운것 같습니다.
    그럴수록 할수있다, 하면된다라는 믿음과 꿈이 그러한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지 않나 싶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바쁘시겠지만 앞으로도 많은 글 부탁드립니다^^;;
    (저도 태권PAPS 2차교육 신청했는데..ㅎ)

  • | 2009.09.19 02:46 신고 | PERMALINK | EDIT/DEL | REPLY

    또 놀러와서 재미있는 글 읽고갑니다.
    며칠전에 늦게 퇴근해서 새벽늦도록 영화보다가 다음날 출근해서 닭병걸린 녀석처럼 꾸벅꾸벅 졸던 제 모습이 생각 나는군요. 대학시절땐 날을 세워가며 깡소주를 마셔도 다음날 아침 첫수업 들어가도 거뜬하던데, 요즘은 정시에 자고 비타민같은 것들도 복용을 하는데, 아침에 일어나기가 고역이더군요.
    하는것도 없이 왜 이리 피곤한지는 모르겠네요.

    그리고, 제가 도장을 그만 나가자 아이들도 나가기 싫다고 하는데, 이것참 설득해서 계속 보내기도 힘들고, 아네가 직장이 생겨서 저녁에 늦게 올때도 있는데 제가 차로 몰고가서 도장에 데리고 가긴 또 좀 뭐하고, 골치아프게 되었네요.

  • 태권주니 | 2009.09.23 16:08 신고 | PERMALINK | EDIT/DEL | REPLY

    마루님..... 아뒤 처럼 마루에 누워서 수업을 하시면 안 되용!~~
    최고가 되기는 힘들어도 최선은 해야지용...
    저 역시 나태해지긴 하지만... 내가 하는 행동이 곧 수련생의 행동이라고 항상 자기전에 꼭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태해지지 않기 위한 첫번째 수칙은 첫부 시작하기 전에 가볍게 먼저 몸을 풀어주는것도 어떨까요?
    왠지 전 기분이 좋아져서 하루가 편해지는 날이 많더군용.
    마루님 세상에서 제일 쉬운게 초심을 잃지 않고 해 나간다는거지만 그만큼 어려운것도 초심을 지키는게 어렵지 않을까 생각이 드네요.
    그래도 마루님은 잘 해나갈것입니다.
    (잘 못된점을 알고 개선해 나갈 능력이 충분히 있으신 분이닌깐요....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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