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 도복과 띠의 색채 의미 :: 2008.05.05 14:49

I. 서론

최근 태권도에 있어서 근원을 파악하고자 하는 수많은 노력과 왜 그런 것인가라는 의문에 대한 궁극적인 해답과 관련된 연구는 태권도 계의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대내외적으로 형성된 태권도의 위상을 지켜줄 만한 철학적 지식 체계가 부족하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현상일 것이다.
만약 학문의 구성 요건을 철학적 지식, 과학적 지식, 실천적 지식으로 대별한다면 태권도는 어느 무도보다도 폭 넓은 실천적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태권도가 진정한 「학」으로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철학적, 과학적 지식에 보다 폭 넓은 연구가 절실하고, 이러한 지식체계를 세우는 일이 태권도 계의 학자들이 해내야만 하는 과제일 것이다.

'태권도가 학문인가'라는 질문은 각 대학의 태권도학과 교수진들이 받아왔던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던 질문이었고 보면, 현재까지 진행되어 왔던 선행연구에 대한 냉철한 비판을 통해 지식의 체계화를 위한 작업과 함께 태권도의 뿌리와 동체를 튼튼히 하는 작업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 연구는 태권도의 지식체계 형성을 위한 하나의 작업으로서 도복에 대한 기원을 의상학적 측면에서 탐색하고, 그 색채가 지니고 있는 의미를 색채학의 범주에서 찾아내고자 한다.

우리의 색채의식은 예로부터 음양 오행사상에 의한 정색의 사용 관습과 시대에 따라 복식이 사회 계급의 표현으로 여겨 왔으며, 의·식·주 생활 면에서의 전통문화나 인위를 가미하지 않은 한국의 고유미인 자연주의적인 소박함을 자랑으로 삼아왔다.
즉,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태권도의 도복과 띠도 우리 복식 문화와 관련이 있는 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을 것이며, 도복과 띠의 색채도 어떤 철학적 의미를 지니고 있을 것이라는 전제하에서 이 글의 논의가 진행될 것이다.

Ⅱ. 도복의 사적 고찰

태권도의 도복은 어디에서 유래되었고, 띠는 왜 두르게 되었을까?
복식은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유사한 기능과 기원으로 시작되었으며 현대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해왔다는 학설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태권도의 도복과 띠도 순간적인 발상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인류의 기원과 더불어 우리 나라의 복식의 기원과 사회 환경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음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즉 인류의 복식 기원과 기능이나 형태 그리고 우리 나라 복식의 사적 탐색을 통해 태권도 도복의 기원을 추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1. 복식의 기원

인류가 의복을 입기 시작한 시기는 약 3만년전인 제4빙하기 시대가 끝날 무렵으로 서남아시아 지중해 연안 지역에서 진화 발달하여 유럽으로 이동한 크로마뇽인들이 심한 추위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식료로 수렵한 짐승의 털로 몸을 감싸기 시작한 이후부터라는 것이 정설이다.
인류가 발생한 이래 약 200만년간은 나체 생활을 하였고, 그 이후 원시시대 인류의 복식에서의 피복 재료는 수피나 모피를 사용하였으며, 섬유류의 피복 재료는 신석기 시대에 정착되었고, 최초의 섬유로는 마섬유가 주류를 이루었다.

Basler(1953)는 미국의 16대 대통령인 에브라함 링컨의 강연에서 '인류 최초의 중요한 발견은 나신(裸身)이었으며, 최초의 발명은 무화과 잎의 앞치마였다'는 내용을 소개하면서 링컨 대통령에 의하면 이것이 바로 의상의 기원이었다고 했다.

인간은 구석기 시대부터 기후, 해충, 역할 수행에 따른 위험 등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 복식을 착용하기 시작하였으며, 부족국가 시대 이후부터는 자신의 신분 표시로서 심리적 안정감을 얻고, 미신 또는 종교적 이유나 의식을 표현하기 위해서 복식을 착용하기도 하였다.

복식의 기원에 대한 학설은 인체보호설, 신체장식설, 복합적 유인설이 있다. 인체보호설은 말리노우스키(Malinowski)의 기후적응설 등이 있고, 신체장식설은 나체생활에서 오는 상해를 막고 동물들이 가진 두터운 체모와 같이 신체보호기능의 목적에서 착장한 것을 기원으로 보는 것으로 호부설(護符說: theory of amulets), 상징설(象徵說: theory of symbolism), 성차설(性差說: theory of sex attraction), 심미설(審美說: aesthetic theory) 등이 이에 속한다. 복합적 유인설은 클룩혼(Clyde Kluckhohn)과 질(Eric Gill)의 주장처럼 인체보호설이나 신체장식설의 어느 단일한 유인으로는 의상의 기원을 설명할 수 없으며, 단지 여러 가지 복합적 유인으로써만 의상의 기원을 설명할 수 있다는 학설이다(김영자, 1987).

복식이 갖는 기구 또는 도구로서의 기능은 외부 환경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하고 신체의 활동을 원활히 할 수 있도록 신체보호라는 안전의 목적과 신체적 안락감 증진의 기능이 있다. 또한 감정적·심리적 욕구로서의 기능은 사회적으로 자기의 신분이나 권위를 인정받고 자기 존중심을 향상시켜 심리적 만족감을 얻게 하는 기능이다. 복식을 통해 전달되는 착용자에 대한 인적사항을 상징적으로 표현하여 언어적 설명이 없이도 상대방에 관하여 많은 사항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복식을 무언의 언어(non-verbal language)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 기능을 의미하는 것이다.

2. 우리 나라의 복식

현재까지 발견되어온 여러 가지 벽화나 미술품 중에 나타난 우리 나라 복식의 특성과 전통성을 살펴볼 때 고구려 이래로 오랜 세월을 이어오는 가운데에도 치마와 저고리와 바지, 포(袍) 등의 형태가 기본적인 구조형에서 그다지 벗어나지 않는 전통성을 그대로 유지하여 왔다는데 그 특징이 있다.

저고리(赤古里)는 한국 복식 가운데 상의를 칭하는 대표적인 의복으로서 최초의 기록은 세종 때의 「紅段子赤古里」로 표현되어 있으며, 저고리의 기본 형태는 앞이 전개형(前開型)이고 양쪽 팔이 어깨에서 수평선으로 일직선을 이룬다. 저고리는 한국의 기본 복식으로서 여자에게는 치마 저고리로, 남자는 바지 저고리로 외의(外衣)인 포의(袍衣) 안에 입는 의복이었다. 이것은 고구려, 신라, 백제가 거의 같은 형태를 취하였으며,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같은 구성을 이루어 온 한복의 전통성이다.
조선시대에는 삼국시대까지의 복식에서 나타났던 저고리의 허리에 매던 띠가 없어지고 길이가 짧아졌으며, 띠는 바로 옷고름으로 대신하게 되었다. 단지 남성들에게서 나타나는 띠의 형태는 양반들의 포의 밖에 두르는 형태로 존재하게 되었으며, 여성들에게는 서민이나 기생들의 풍속도에서 나타나 있듯이 끌리는 치마를 감싸주기 위해 두르는 띠로 변화된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저고리와 함께 허리에 매었던 띠는 벽화나 미술품에 나타나 있는 형태를 살펴보았을 때 조선시대의 옷고름이 생기기 이전까지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띠는 실용적인 면에서 저고리와 같은 색으로 되어있거나 다른 색을 사용함으로써 착시현상과 더불어 미적 감각을 위한 황금비례(1:1.618, Golden Section)의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선(線)의 조화와 착시현상은 당시의 대(帶) 또는 띠의 역할 중 중요한 내용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즉 띠의 실용적인 면 외에 조화와 분할을 위한 미적 의미(aesthetic meaning)를 지니고 있었다.
띠는 상고시대 이전부터 단식(單式) 또는 복식(複式)의 복식(服飾) 형태에서 매무새를 잡아주는 역할로서 사용되어 왔으며, 삼국시대 대부분의 역사서에는 대(帶)로 표현되어 있다. 또한 허리에 매어 행동을 간편하게 하는 한편 겉에 금, 은, 동, 철 등의 장식을 붙여서 사용하였으며, 장식품을 차거나 무기를 패용하는데 사용되기도 하였다. 신분에 따라서는 그 재료와 양을 달리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띠(帶)는 우리 나라 독자의 창의적인 것으로서 금관(金冠)이나 이식(耳飾)과 함께 복식문화사상 세계적으로 가장 빛나는 자랑거리이다.

3. 도복의 기원과 의미

태권도 도복은 복식의 기원과 더불어 우리 나라의 복식의 형태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원래 태권도 도복은 흰색의 천으로 만들어져 애용되어 왔는데, 1978년 7월에 유급자, 품 그리고 유단자 도복으로 구분하여 공인 도복을 지정함으로써 오늘날의 도복으로 변화되어 왔다.
따라서 태권도 도복은 상기에서 언급한 우리 나라 복식의 형태에서 그 기원을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태권도 도복은 바지, 저고리, 띠로 구성되어 삼극을 이루며 하나를 뜻하는 「한」이며 한 벌이라 불린다. 도복은 한국의 고유 의상과 유사한 점이 많은데 한복이 한민족의 고유 의상으로써 언제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는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단지 『삼국사기』의「신라조」와 『삼국유사』의 「가락국기」에 한복 바지에 대한 기록이 있을 뿐이며, 중국의 『사서(史書)』에서도 고구려, 백제, 신라의 바지에 대한 기록을 찾아볼 수 있을 뿐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삼국이 모두 바지를 착용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중국 송나라 서긍이 쓴 『고려도경(高麗圖經)』에는 '고구려 조의선인은 흰 모시옷을 입고 허리에 검은 비단을 둘렀다'는 글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고구려 조의선인의 옷 모양인 것이다. 지금의 도복 역시 고구려 무인들이 입었던 조의선인의 옷과 별로 다를 것 없이 흰옷에 띠를 매고 있다. 기다란 윗저고리에 바지 역시 삼국시대의 고분 벽화에서 볼 수 있는 한민족 고유의 옷과 거의 같다.

우리 나라의 아름다움은 자연스러움에 있다. 그것은 이 땅과 이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잘 어우러져 있다는 말이다. 한국의 아름다움이 잘 나타나 있는 것은 선(線)과 색(色), 그리고 조형(造型)이다. 특히 태권도의 도복과 띠는 우리 나라의 아름다움의 특징에서 나타나는 선 그리고 색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고유의상 한복의 아름다움은 직선과 곡선이 서로 반전하며 엮어내는 유연한 선의 흐름에서 찾을 수 있다. 이 한복의 선이 만들어내는 큰 틀은 人자 모양의 A 라인이다. 人은 동양철학에서 천지인의 완전한 조화를 상징한다. 곱게 탄 가르마, 쪽찐 머리에 꽃은 옥비녀, 콧날이 도드라진 고무신을 신고 모시옷을 입은 여인의 모습 등 그 날아갈 듯한 자태는 우아함과 신비감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미감은 우리의 한복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으며, 태권도 도복도 이러한 한국의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한복의 형태와 특징을 담고 있다.

한복의 재단법과 유사성을 지닌 태권도 도복은 바지저고리의 형태로 볼 때 ○·□·△ 세 가지 모양으로 되어 있다. 실례로 바지에서 허리는 ○로 마루폭은 □ , 그리고 사폭은 △의 꼴로 되어 있고 저고리에서도 같은 꼴을 찾아볼 수 있다. 여기서 원(○)은 하늘을, 방(□)은 땅을, 그리고 각(△)은 사람을 상징하고 있는데, 즉 원·방·각(○·□·△)은 천(天)·지(地)·인(人)을 표시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 꼴의 원·방·각이 『삼일신고』에서는 만상(萬象)의 근원이 된다고 했고, 한복의 바지  저고리가 원 방 각의 세 모양으로 만들어졌다 함은 만상의 꼴을 상징화해서 이 세 개의 삼극이 하나, 곧 「한」이 되는 것이다.

음양(陰陽)의 원리에서 사람을 우주에 비하여 소우주라 하고, 음에 해당하는 바지는 땅이고, 양에 해당하는 저고리는 하늘 그리고 띠는 사람으로 본다면 천·지·인의 삼재 사상과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삼재 사상이 치마, 저고리, 바지뿐만 아니라 두루마기, 장옷 등 모든 의식주의 구조와 생활 용구에도 바탕을 이루고 있어 한민족사의 맥과 사상을 엿볼 수 있다.
한민족은 하늘(양) 땅(음) 사람의 삼재 중에서 하늘과 땅의 요소를 사람으로 집약하였다. 태권도복에서 저고리는 하늘, 바지는 땅에 해당되고 띠는 이 두 개념을 포함하여 우주라 하는데「한」철학에서는 사람을 소우주라 일컫는다. 도복은 전체적으로는 정적인 면이 강하며, 띠는 이 도복의 중심에 동적 요소인 역동성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도복이란 원래 다른 복장과 달리 모양이 잘 바뀌지 않는 보수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고구려의 조의선인이 입었던 옷과 고조선의 국자랑들이 입었던 옷이 별 차이가 없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즉 고구려의 조의선인과 신라의 국선 화랑의 옷은 고조선의 전통이 이어져 생겨난 것으로 생각된다. 고조선 때 무예를 익히던 젊은이들인 국자랑이 삼국시대로 이어지면서 고구려의 조의선인과 신라의 화랑이 되었다고 정리할 수 있다.

4. 띠의 기원과 의미

띠는 상고시대의 벽화나 미술품에서 나타나 있듯이 복식의 중요한 구성 요소였다.
우리 나라의 복식에서 띠는 본래 복식의 선(線)이 변천되어 실용적인 측면에서 포(袍)나 저고리(赤古里)의 매무새를 잡아주는 역할과 더불어 미감을 북돋기 위한 방법으로 활용되기도 했으며, 삼국시대부터는 대(帶) 또는 혁대(革帶)로 불리어지며 색이나 장식물로서 그 관직의 위치를 표시하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는 한복 저고리의 옷고름이 띠를 대신하게 되자 가무복(歌舞服)이나 관복 또는 전투복 등의 일부분을 제외하면 띠의 사용이 극히 제한되었으나, 관복을 입었을 때 관직의 위치를 나타내거나 무기를 패용하거나 장신구를 달기 위한 용도로 활용되어 오다가 오늘날의 바지의 혁띠로 변화되어 왔다.
그러나 상고시대부터 복식과 함께 유래되어온 띠의 실용적인 면이나 그 유형적 의미는 현재까지도 태권도를 비롯한 각종 무도에서 존속되고 있다.

태권도에서 띠는 바지, 저고리와 함께 한 벌의 도복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이다.
태권도인이 도복을 입고 띠로 단전 부위를 중심으로 두 번 단단히 두르는 의미는 음과 양이 만나는 기(氣)의 장소인 단전으로 기를 모으기 위한 것이며, 이 때에 만들어지는 삼각 꼴을 이루는 매듭의 각(△)은 사람을 상징하게 된다. 이는 단전에 기를 모으고 적재적소에 기(氣)를 기(技)로 운용하자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이 때 등인 양(陽)을 감싸 안아서 음(陰)인 배 쪽에서 매듭을 짓게 되므로 음과 양이 단절되지 않게 운용시켜 주며, 단전 앞에서 매듭을 하게 되므로 기(氣)가 회귀하게 되는 것이다. 매듭은 올바른 순서에 의해서만이 삼각 꼴을 이루게 되므로 역행이 아닌 순행의 질서를 의미한다.

띠는 도복에 견주어 우주를 상징하듯 실제로 태권도인은 도복을 몹시 조심스럽게 다루며 간수하는 예(禮)를 매우 중요시하고 있다.
따라서 태권도 수련은 엄격한 질서를 요구하며 그 질서는 바로 띠의 색상 차이로 권위와 상하 관계가 분명해진다. 그리고 그것이 다시 예를 바탕으로 변화하고 조화되어 질서를 이루게 된다.
예로부터 우리의 선조들은 복식의 형태에서 색채와 더불어 대(帶)나 혁대(革帶)의 장식물로서 그 신분의 위치를 표시했던 시기가 있었으나, 태권도장에서는 심신을 수련할 목적으로 신체의 접촉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장식물에 의한 상하의 구별은 불가하므로 태권도에서는 동양철학적 기저 속에서 오행의 의미를 나타내는 색채의 차이로 그 상하를 구분하고 있다.

Ⅲ. 한국 민족의 색채의식

명절에 색동저고리에 빨간 치마를 입은 여자아이나 파란 단령으로 도련님 차림의 사내아이들이 어른 손에 매달려 친척집 나들이하는 귀여운 풍경과 주홍색이나 옥색 마고자의 남정네 또는 노란 저고리에 다홍치마 입은 여인들의 옷매무새, 이들이 우리들의 구미에 맞고 어려서부터 보아 오던 색들이며 무의식 속에서 우리 겨레의 생활 색깔로 생각하고 있다.

음양 오행사상에서 풀어낸 다섯 가지 순수하고 섞임이 없는 기본색을 정색(正色, 定色, 正方色), 또는 오색(五色), 오채(五彩)라고도 했으며, 정색과 정색과의 혼합에서 생기는 색을 간색(間色)이라고 불렀다. 음양의 기본 10색 중 오정색은 양(陽)에 해당하며 적색(赤色), 청색(靑色), 황색(黃色), 백색(白色), 흑색(黑色)이며, 간색은 음(陰)에 해당하며 녹색(綠色), 벽색(碧色), 홍색(紅色), 유황색(硫黃色), 자색(紫色)이다.  이러한 색들은 음양 오행적인 우주관에 바탕을 둔 사상체계에서 출발하였다. 이황(李滉) 선생의 퇴계집 진성학십도차(進聖學十圖)를 보면 태극도설(太極圖說)관한 내용이 있다.
그 외에도 이수신편(理藪新編)에서 말하는 음양 오행사상에 따른 방위(方位), 계절(季節), 색(色)을 도상화하면 그림과 같이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다.

<첨부화일 참조>

그러면, 한국의 색채 기호는 어떤 것이었을까?
한국의 미는 선(線)을 기점으로 해서 색채는 사치보다도 밝고 활발한 아름다움과 그 아름다움을 지닌 밝고 맑은 사상을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우리의 색채 감각도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자연적인 면, 사회적인 면, 경제적인 면의 여러 조건으로 색채 생활의 제약을 받아 필연적으로 색채감각이 발달하지 못하여 백색과 흑색과 같은 무채색 또한 차분히 가라앉은 색을 즐겨 사용했으며, 이러한 여러 가지 제약을 받음으로써 높은 채도보다도 낮은 채도로, 복잡한 배색보다는 단순한 배색을, 강한 대비의 조화보다는 약한 대비 조화나 유사 조화를 선호하게 되었다. 따라서 백색에 대한 한국인의 기호는 역사적 전통에서 비롯된 당연한 논리에서 성립되었다고 할 수 있다.

백색(白色)에서 '白'은 본래 도토리 꼴의 열매에서 생겨난 상형문자로서 측백나무(柏) 열매의 속살이 희다고 해서 생긴 글자이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삼백(三白)을 흰 밥, 무우, 백비탕(白沸湯)으로 꼽으면서 백색을 말할 때 '아주 희다'는 뜻으로 순백(醇白, 純白) 또는 수백(粹白), 백정(白精), 정백(精白)이라고 하고, 선명하게 희다는 뜻으로 선백(鮮白)이라고 표현했다.
우리 조상들이 갓난아이가 태어나자마자 횐 옷을 입힌 것은 무색(無色), 소색(素色)의 이미지로 무색의 일상생활이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의 사상과 일치하는, 즉 자연에의 동화사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백색이 갖는 정서는 신성, 고귀, 순결, 위엄 등을 나타낸다. 황제가 타는 말이나 지체 높은 분의 말은 의례이 백마가 되고 그래서 점잖고, 위엄이 있어 보인다. 신구약 성경에서도 백색은 영광과 위엄(다니엘서 7장, 요한계시록 20장)을, 그리고 순결, 승리를 상징하고 있으며, 특히 신약의 요한계시록에서는 성결과 신성을, 요한복음 4장에서는 완숙을 상징하는 색으로 기록되어 있다.

우리 민족이 흰옷을 즐겨 입어 백의민족(白衣民族)이라고 했는데 흰옷을 숭상하는 것은 청렴결백(淸廉潔白)의 긍정적인 면도 있었지만 계급이 낮은 농민이나 서민은 횐옷을 입게 했으며, 물들인 채색 옷을 입는 것을 금했었다. 따라서 백색은 서민의 색이었기에 한국인의 백색에 관해서는 채색한다는 적극적인 의식이 없었다.
이러한 백의의 통칙을 깨뜨리고 색으로 꾸며진 옷을 입는 경우는 왕이나 귀족, 어린 아이 그리고 혼례의상이나 명절일 때에는 예외였다. 또한 주술적인 악귀를 쫓거나 그 예방에 음양 오행사상에 의해 적색, 청색이 많이 사용되었다. 적색은 만물이 무성하는 남방(南方)의 색으로서 양(陽)에 해당하며, 청색은 해가 뜨는 동방(東方)의 색으로서 양(陽)에 해당된다. 이러한 색은 생명, 생기와 같은 의미로 인식했기 때문에 주술적인 악귀나 병마인 음(陰)을 쫓는데 이 양(陽)의 색들을 사용했다. 궁중의식의 길례(吉禮)에서는 주로 적색과 청색이 사용되었고 흉례(凶禮) 때에는 흑색, 백색이 사용되고 부분적으로는 황색도 사용되었다. 따라서 적색, 청색, 황색, 백색, 흑색으로 이루어진 색채의 세계 가운데서 백색과 흑색만이 서민의 사용이 허용되었고, 그 외의 색채 즉 유채색은 상층계급의 생활, 의식 등에 사용되었다(하용득, 1995).

일상생활의 방위에서는 좌청룡, 우백호, 북현무, 남주작의 사신도를 그렸으며, 불화에서는 백색 바탕에 주, 흑색으로 먼저 윤곽을 그리고 녹청, 황토, 군청, 대다색을 썼으며, 공주의 고분에 나타난 바에 의하면 백색, 흑색, 청색의 안료를 주로 사용했다.
그 외에도 화려한 색채를 사용한 흔적은 단청에서도 나타나 있다. 본래 단청은 오색(五色)을 배합하여 이루어지며, 이 오채(五彩)는 음양 오행의 개념으로 단청의 다섯 가지 색조, 즉 오채로서 배색되는 음양의 삼라만상을 나타냄을 뜻한다. 대체적으로 원시의 단청은 단순한 모양에다 둔한 대비, 약한 채도이며, 단지 고급 건축에만 사용되었던 단청이 점차로 세련되고 발전되어 오면서 고구려 시대에서 고려에 이르는 동안 정제되어 중후하고 둔탁한 색채가 차츰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변화하여 선명한 색채로 발전하게 되었다.

한국인의 정서와 의식 속에는 색채와 관련된 부분들이 많이 나타난다. 한국적인 세계와 생활 양식을 지배했던 유교적 사고방식은 인간적인 감각이나 감정을 억제하고 멀리하면서 인격과 형식, 규범 등을 중요시하게 생각했던 사상이었기 때문에 색이 있는 것은 곧 육신의 욕망이라고 생각하여 천하고 품이 없으며 인격적이 못된다고 여겨왔다.  또한 여기에 백색을 숭상했던 백의 민족이라는 것의 밑바닥에 깔려있는 의식 속에는 감정이나 감각적인 것에서 초월하여 고매한 인격에 이른다는 금욕주의적인 인격완성의 한국인 특유인 인생관을 엿볼 수 있다.
고고한 인격, 인품, 그리고 청렴한 청백리나 굳은 정절을 지키려는 이상적인 인간상도 역시 백색을 좋아하는 심리적 반응에서 강하게 나타나 있다. 그것은 인간적인 감정 또는 감각적인 것에 어떠한 의미를 부여해서 해석하더라도 모나지 않고 뚜렷하지 않은 은근한 한국인의 전형적인 인간상을 만들어 냈고, 따라서 우리의 전통적 의식은 색채라는 것에서 벗어나 채색을 피하거나, 금지하는 것에 집중하게 되었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의 색채 사용은 음양 오행적인 이치에 바탕을 둔 사상의 배경과 통치권에 의해 채색 및 특정색을 금지한 사회적 배경, 크고 작은 전란으로 인한 궁핍한 경제적 배경, 그리고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려는 자연적 배경이 한데 어우러져 우리 겨레의 특유한 색채 문화를 이룩했다고 할 수 있다.

Ⅳ. 도복의 색채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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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복의 색채

도복은 왜 횐 색일까?
최근 유도에서 도복을 유색으로 입을 수 있게 하는 시점에서 태권도 도복은 왜 흰색이어야 하며, 그 횐 색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실제로 도복을 이루는 구성은 저고리, 바지, 띠로 되어 있으므로 도복이 횐 색이라고 하는 의미는 횐 색이 주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1978년 이후부터의 도복은 횐색과 검은색 그리고 품 도복은 저고리 깃에 빨강·검정 두 색으로, 유단자 도복은 검정 깃으로 구분되고 ▽모양새를 이루고 있다.

도복 색깔의 시원은 우주의 본체가 흰색이고 만물의 근원 또한 흰색으로 보는 것에 있다. 한민족의 자연 철학 사상이 우주를 본체로 하는「한」, 곧 하나에서 시작되었고,「한」은 '희다'에서 유래된 것이며, '희다'는 다시 우주의 본체를 의미한다. 따라서 도복의 색이 흰색인 것은 우주의 본체가 흰색이고 만물의 근원 또한 흰색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도복의 흰 색은 예로부터 우리의 선조들이 본능의 억제를 겸양지덕(謙讓之德)으로 비약시킨 무색을 선호했던 역사적 전통에서 비롯된 당연한 논리에서 성립되었다고 할 수 있다.
횐 색은 우리 겨레의 충절을 표현한 것이요, 사심 없는 선비의 깨끗한 마음을 옮긴 청렴결백(淸廉潔白)의 색채이며,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의 사상과 일치하는 자연에의 동화사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도복의 흰 색이 갖고 있는 정서는 신성, 고귀, 순결, 위엄, 승리나 완숙을 향한 출발을 상징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렇듯 태권도에서 도복이 의미하는 철학적 무예성은 도복을 청결히 간수하며 심신을 갈고 닦는 도의(道衣)로서 중시하는데 있는 것이다.

혹자는 태권도의 세계화를 위한 방법으로 유도와 마찬가지로 유색(有色)의 도복을 입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태권도는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 무술에서 생겨난 우리의 것이므로 백의민족이라는 역사적 전통과 철학적 의미를 지닌 흰 색의 도복을 고수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의미 있는 일이다.

2. 띠의 색채

띠의 색에 대한 철학적 지식의 부재로 인해 국내외의 지도자들은 띠의 색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당혹감을 떨쳐 버릴 수 없으며, 그 의미를 전달해줄 수 있는 명쾌한 해답을 갈구하고 있다.
실재로 몇몇의 특정 지도자들은 나름대로의 경험 철학을 바탕으로 띠의 색에 대한 의미를 부여해서 지도하고 있으며, 이미 태권도장에서는 전통적인 백색, 노란색, 청색, 빨간색, 검은색 띠의 단계를 무시하고 녹색, 밤색, 회색의 띠를 사용하기도 한다. 따라서 도복과 띠를 판매하는 곳에서도 이미 다양한 유급자 띠가 준비되어 있다는 것은 상식적인 일이다.
또는 무급자, 유급자(8급∼1급)의 띠와 품과 단의 띠를 10단계 또는 11단계로 색을 부여해서 사용하는 지도자가 있는가 하면, 흥미본위의 경영전략으로 「람보띠」를 설정해서 사용하는 경우도 볼 수 있다. 아마도 그러한 단계를 설정한 지도자들은 필요에 따라 서양의 색채학적 견지에서 명도와 채도의 단계를 응용해서 구상했을 것이다. 아니면 미국 영화의 람보가 태권도를 창시했거나, 태권도의 대가여서 그러한 띠 색을 자유 의사대로 고려했는지도 모르겠다.

태권도가 우리의 전통무술에서 비롯된 것이고, 우리 나라가 종주국임을 인정한다면 우리의 전통적 색채인 오방정색의 의미를 소홀히 해서는 안될 것이다.
띠는 상고시대의 벽화나 미술품에서 나타나 있듯이 복식의 중요한 구성 요소였다. 그러나 원피스의 복식형태를 취했던 국가에서는 띠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다. 우리 나라의 복식형태에서 띠는 본래 복식의 선(線)이 변용된 것으로서 벽화나 미술품에 의하면 삼국시대 이후부터는 실용적인 측면에서 포(袍)나 저고리(赤古里)의 매무새를 잡아주는 역할과 더불어 미감을 북돋기 위한 방법으로 활용되기도 했으며, 대(帶) 또는 혁대(革帶)로 불리어지며 색이나 장식물로서 그 관직의 위치를 표시하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는 한복 저고리의 옷고름이 띠를 대신하게 되자 가무복(歌舞服)이나 관복(官服) 또는 전투복 등의 일부분을 제외하면 띠의 사용이 극히 제한되었으나, 관복을 입었을 때는 관직의 위치를 나타내거나 무기를 패용하거나 장신구를 달기 위한 용도로 활용되어 왔다.
그러나 해방이후 서양의 복식문화가 전해지면서 오늘날의 바지의 혁띠로 변화되어 실제적인 의미에서 전통적인 띠의 형식은 변용되고 말았다.
하지만 상고시대부터 복식과 함께 유래되어온 띠의 실용적인 면이나 그 유형적 의미는 현재까지도 태권도를 비롯한 각종 무도에서 존속되어 왔다.
예로부터 우리의 선조들은 복식의 형태나 색채와 더불어 대(帶)나 혁대(革帶)가 장식물로서 그 신분의 위치를 표시했던 시기가 있었듯이 태권도에서는 띠의 색채로서 그 상하 관계를 구분하고 있다.

띠의 색상은 다섯 가지로 구분되어 있는데 초보자의 흰색, 유급자의 노랑 파랑 빨강과 유단자의 검정색이다. 삼극적 원색은 노랑 파랑 빨강이고 흰색과 검정색은 해와 달, 낮과 밤, 시작과 완성 등 음양을 상징한다. 이 다섯 가지 색상의 의미는 음양 오행의 원리로 인식되고 있다. 오행은 수(水), 화(火), 목(木), 금(金), 토(土)를 말하며 천지의 생성 원리이다.
소우주인 인간은 몸 안에 오장육부(五臟六腑)를 갖고 있듯이 오장에서 오행이 나왔고 신장(水), 심장(火), 간장(木), 폐장(金), 비장(土)으로부터 오행이 시작된다. 그리고 오행은 오방의 중앙(세상의 중심)과 함께 동서남북의 다섯 방위를 말하고 이는 우리 나라의 전통 색깔인 오방색(五方色) 또는 오방정색(五方正色)이라고 한다.
태권도에서 띠의 오색(五色)은 바로 우주의 원리인 오행(五行), 오기(五氣), 오장(五臟)과 일치하며, 이 오색은 오늘날에도 한국인의 전통색으로 궁궐이나 사찰 등 건축물의 단청에서부터 복식, 민화, 포장지 등에 이르기까지 그 쓰임새가 다양하다.

태권도에서 띠가 상징하는 급과 단의 숫자는 시작과 완성이 아홉 수로 이루어지는데 이는 하늘과 땅, 음양과 오행의 합수를 의미한다. 태권도를 수련하는 과정에서 색상의 변화 원리는 오행과 부합하며, 다섯 가지 색에 해당되는 인체내의 오기는 자아 자체가 우주적 기(氣)의 흩어짐과 모임의 끊임없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기(氣)적인 현상으로서 생명소인 것이다(이경명, 1997).
태권도에 입문하여 초보자의 수련시기에는 흰 도복 바탕에 흰 띠부터 시작해서 점차 노랑, 파랑, 빨강을 거쳐 마침내 검정 띠에 이르게 되는데 이러한 과정은 피땀 흘리는 고된 수련을 통한 원리에서 창출되는 것이다.

초보자일 때에는 흰 도복에 흰 띠로 시작하는데 흰색은 탄생 또는 시작 이전의 무(無)의 상태 곧 태극을 의미한다.

노란색 띠는 오행설에서의 흙(土)을 상징하고 비옥한 땅을 뜻하는 말이다. 결국 노란색은 생명의 원천이며 생산과 재생산을 의미한다. 즉 태권도에 비유한다면 노란색 띠는 만물의 생동을 위해 땅에 씨를 뿌리기 시작하여 노란 새싹의 소생을 바라보는 초보적인 단계이다.

파란색 띠는 우물 속에 고인 맑은 물(淸水)의 색을 말하며, 동쪽의 색이고 계절적으로는 봄을 가리킨다. 어둠 속에서는 빛을 발하는 것처럼 보이며, 투명한 대기에 서려있는 색이기도 하다. 파란색은 재생, 소생, 정직, 희망, 젊음, 침착, 깊음, 고요함을 상징한다. 즉 태권도에 입문한 후 수많은 태권도의 기술과 동작들이 어둠 속에서 눈에 보이는 듯한 단계로서 해동을 거쳐 봄날에 잎들이 파릇파릇하게 자라나고 있는 단계이다.

빨간색 띠가 주는 감정효과는 자극적이고 왕성하며 능동적이다. 빨간색은 노란색보다 밝지는 않으나 빛이 쉽게 사라지지 않고 탄력성이 있다. 즉 나무의 잎과 줄기가 무성하게 자라서 단풍을 이루듯이 태권도의 동작이 무르익는 단계이다.

검은 띠는 빛의 기원이며 종착지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흑색은 시각적으로 소극적인 색이며, 고급스럽다든지 세련되었다던가 하는 인상을 주는 면도 있다. 검은 색의 의미는 고급, 세련, 권위, 위엄의 이미지를 준다. 즉 검은 띠는 태권도의 기본 단계를 모두 익혔다는 종착의 시기인가 하면, 고급의 동작이나 동작의 세련미를 가꾸기 위한 또 다른 시작 단계이다.

이와 같이 띠는 태권도에서 오행, 오색, 오기에 의한 원리를 바탕으로 하는 중요한 통과 의식을 상징하는 예장(禮裝)을 의미한다. 즉 포괄적 의미에서 태권도의 띠는 우리의 전통적인 오색을 근간으로 하는「한」철학적 무도성을 발견할 수 있다(이경명, 1997).

만약 태권도에서 오색으로 단계를 설정한 것이 불충분하다고 생각된다면 무작정 색을 선정해서 단계를 구분하는 것보다, 음양 오행적인 우주관에 바탕으로 하는 사상체계에서 출발하여 양(陽)에 해당하는 오방정색(五方正色)인 적색, 청색, 황색, 백색, 흑색에 음(陰)에 해당하는 간색(間色)인 녹색, 벽색, 홍색, 유황색, 자색을 단계별로 삽입하여 음양이 조화를 이루게 구분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예를 들어 무급은 정색인 무(無)를 상징하는 횐 색, 8급은 횐색과 노랑의 간색인 벽색, 7급은 정색인 노란색, 6급은 간색의 중앙색인 유황색, 5급은 노랑과 청색의 간색인 녹색, 4급은 정색인 청색, 3급은 빨강과 노랑의 간색인 홍색(주황색), 2급은 정색인 빨간색, 1급은 빨강과 흑색의 간색인 자색(紫色), 그리고 유단자는 시(始)와 종(終)을 상징하는 흑색으로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 들어 4품의 제도까지 만들어진 이상, 품 띠가 꼭 필요하다고 인정한다면, 그 의미는 빨강 띠의 능력은 인정되지만 검은 띠에 미치지 못한다는 의미에서 현행의 적색과 흑색을 반씩 배열한 품 띠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Ⅴ. 결어

인간은 누구나 일자 즉 지적 원리로 향한 상승에로의 욕구를 지니고 있으며, 태권도의 지식체계 확립이라는 대전제를 두고 하나씩 올을 엮어서 옷감을 짜고, 옷을 입히는 일은 태권도인 모두의 사명이다.
즉 태권도의 세계가 명쾌한 논리로 설명될 수 있고, 이해 가능한 내용을 가질 수 있도록 철학적 근거를 마련하는 일은 지속되어야 한다. 또한 우리가 흔히 지나쳐버릴 수 있는 아주 작은 부분일지라도 그 내용을 충실히 해야 하는 사명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태권도의 도복은 우리 고유의 복식 문화와 깊은 관련이 있으며, 그 색채가 가지고 있는 의미 역시 우리의 전통색인 오색에 근거를 두고 있다.
도복은 한복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미감과 특징을 담고 있으며, 고조선의 국자랑이 입었던 옷과 고구려의 조의선인이 입었던 옷과 같이 삼국시대로 이어지면서 오늘날까지 전승되어 왔다.

도복의 흰 색은 신성, 고귀, 순결, 위엄, 소박의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예로부터 우리의 선조들의 겸양지덕(謙讓之德), 청렴결백(淸廉潔白),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의 사상과 일치하는 자연에의 동화사상에서 비롯된 것이며, 도복이 의미하는 철학적 무예성은 도복을 청결히 간수하며, 심신을 갈고 닦는 도의(道衣)로서 중시하는데 있는 것이다.

띠는 우리 나라 복식의 선(線)이 변화되어 실용적인 측면에서 포(袍)나 저고리(赤古里)의 매무새를 잡아주는 역할과 더불어 미감을 북돋기 위한 방법으로 활용되었고 삼국시대부터는 대(帶) 또는 혁대(革帶)로 불리어졌으며, 상고시대부터 복식과 함께 유래되어온 띠의 실용적인 면이나 그 유형적 의미가 태권도에 전해지고 있다.
이러한 띠의 색상은 우리의 전통적인 오정색의 다섯 가지로 구분되어 있는데 초보자의 흰색, 유급자의 노랑 파랑 빨강과 유단자의 검정색이다. 띠의 삼극적 원색은 노랑 파랑 빨강이고 흰색과 검정색은 해와 달, 낮과 밤, 시작과 완성 등 음양을 상징한다. 이 다섯 가지 색상의 의미는 음양 오행의 원리로 인식되고 있다. 띠의 오색(五色)은 바로 우주의 원리인 오행(五行), 오기(五氣), 오장(五臟)과 일치한다.

태권도 띠에서 철학적 사상의 근본 없는 창작의 색채를 사용해서는 안된다.
만약 띠를 오색의 단계로 설정한 것이 불충분하다고 생각되어 철학적 의미 없이 무작정 색을 선정해서 단계를 구분하는 것보다는 음양 오행적인 우주관에 바탕으로 하는 사상체계에서 출발하여 양(陽)에 해당하는 오방정색(五方正色)인 적색, 청색, 황색, 백색, 흑색에 음(陰)에 해당하는 간색(間色)인 녹색, 벽색, 홍색, 유황색, 자색을 단계별로 삽입하여 음양이 조화를 이루게 구분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즉 무급은 정색인 무(無)를 상징하는 횐 색, 8급은 횐색과 노랑의 간색인 벽색, 7급은 정색인 노란색, 6급은 간색의 중앙색인 유황색, 5급은 노랑과 청색의 간색인 녹색, 4급은 정색인 청색, 3급은 빨강과 노랑의 간색인 홍색(주황색), 2급은 정색인 빨간색, 1급은 빨강과 흑색의 간색인 자색, 그리고 유단자는 시(始)와 종(終)을 상징하는 흑색의 단계로 설정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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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AhnsTaekwon 안용규 / 한국체육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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